그냥 미술학원에 있는 컴퓨터치곤 너무 호사스럽지 않은가 하고 여겨지는 파워맥 9500, 21인치 모니터 1대와 14인치 모니터 2대, 책상 하나, 액자 하나...컴퓨터에 어지간히 돈을 쏟아 부은 주인의 이력을 말없이 웅변해 주는 이 작은 방은 바로 화가의 작업실, 그것도 동양화가의 작업실이다.
한복을 입은 작가라든지 차 향기와 묵향이 은은히 배어있는 온돌방이라든지, 아니면 적어도 멋진 싯귀와 낙관이 어우러진 동양화 한 폭쯤은 걸려 있으리라는 평범한 기대는, 낙관 대신 바코드가 찍힌 산수화를 본 순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코드로 낙관을 대신한 화가의 아이디어가 무릎을 치게 한다.컴퓨터로 그린 그림에 이 이상 더 어울리는 낙관이 어디 있으랴!이 기막힌 아이디어의 주인공이 바로 조준영 씨(36)다.
* 바코드 찍힌 산수화
미술사에 있어서 컴퓨터의 등장은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이라 불렀던 20세기 미술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자 동반자의 등장을 의미했다.
그것은 미술의 대중화라는 20세기의 명제를 가장 잘 실현시키는 도구라는 면에서는 미술의 동반자이지만, 그것이 도구의 차원을 넘어서서 주체의 자리를 넘보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유사 이래 누려온 미술의 지위를 위협할 만한 존재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컴퓨터는 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창조해 냈다.특히 영화나 CF와 같은 영상예술에서의 컴퓨터의 눈부신 활약은 그러한 컴퓨터를 만들어낸 것이 인간이란 사실도 잊게 만들 정도로 감탄스럽다.그러나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 컴퓨터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단지 컴퓨터 그래픽이라 불리는 실용미술, 또는 상업미술의 영역만은 아니다.
컴퓨터의 영향이 순수미술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컴퓨터 디자인이나 컴퓨터 그래픽을 순수미술과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그간 몇차례 있어 왔다.그러나 순수미술 전공자가 컴퓨터만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직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컴퓨터 순수미술을 고집하는 조씨의 작업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그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나왔다. 졸업 후 지금까지 수십 차례의 전시회에 참여했고 데생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작품은 동양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서양화 쪽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그는 동양화, 서양화의 엄격한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느낀다.실제로 그이 작품은 그러한 구분에 의해서 규정되기보다는 그냥 현대미술 또는 현대 회화라고 하는 편이 훨씬 적절하게 보인다.
그러나 컴퓨터 순수미술을 시도한 몇 안되는 다른 미술가와 비교할 때 그만이 가지는 차별성이 바로 동양화적 구도와 색감이고 보면 자기 근본에 충실할 때 더 나은 창조가 가능하다는 일반적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 21세기 미술, 디지털 파인 아트
그가 컴퓨터 미술과 인연을 맺은 것은 91년, 형으로부터 매킨토시 컴퓨터를 물려받으면서 부터라고 한다.당시엔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꼈다는 그가 컴퓨터 미술에 빠져든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엔 글씨에 음영을 준다든가 마우스로 흑백 작업을 하는 수준이었지만, 나중엔 손으로 작업한 그림과 컴퓨터 작업을 접목시켜 완성된 그림을 전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때에는 붓과 물감을 이용해 그린 그림에 컴퓨터 그림을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색을 넣어 혼합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이러한 제한된 방식에 한계를 느낀 그는 컴퓨터와 만난지 2년만에 거금을 투자하여 맥IIci를 장만, 본격적인 컴퓨터 그림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이후 대용량의 램과 외장 하드까지 갖춘 막강한 맥 시스템을 구비하기까지 투자한 비용은 그야말로 막대하다.이러한 컴퓨터 하드웨어의 성능에 힘입어 초창기, 사진을 스캔 받아 덧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스케치 부터 완성에 이르는 전과정을 컴퓨터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그림이나 사진을 스캔 받아 비디오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컴퓨터로 입력하여 활용하기도 한다.작품 경향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초기에 사진을 스캔 받아 이용할 때는 주로 인물화를 많이 그렸다. 자신의 자화상도 이때 그렸다고 한다.그러다가 기마도나 고려 청자의 학 문양 등을 이용하여 한국적인 미를 강조하거나 보다 동양적 색채를 띠는 작업을 해나갔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의미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다.
최근엔 시공을 초월한 존재에 대한 연상과 기독교적인 영감에 의한 작품을 많이 한다. 미래에 대한 꿈과 행복에의 희구가 종교적 주제와 만나 보다 나은 사회를 열망하는 화가의 소망과 의지로 표현된 것은 아닐는지.
혹자는 컴퓨터 그림이 사람 냄새가 나지 않고 손맛이 떨어지는 차가운 느낌의 그림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실력이 없어도 컴퓨터가 알아서 다 해주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컴퓨터 미술을 폄하하기도 한다.그러나 컴퓨터 미술은 기본적으로는 일반 회화 작업과 다르지 않다.
단지 화판 대신 모니터를, 붓 대신 타블렛(컴퓨터로 그림을 그릴 때 이용하는 펜처럼 생긴 도구)을 이용한다는 점만 다른 것이다.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화가의 아이디어와 작품 구성력이며 데생력이다.
이런 점에서 컴퓨터는 단지 많은 미술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컴퓨터는 꿈을 현실로 바꾸는 마술 같은 도구이다.
과거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작업이 컴퓨터로는 가능하기 때문이다.무제한 복제를 한다든지 붓으로는 도저히 따라하기 힘든 색다른 효과를 내고 싶을 때, 반투명 합성이나 일정한 함수 값으로 이루어진 문양을 그릴 때 등등, 컴퓨터는 이 모든것을 순식간에 가능하게 해준다.
그에 의하면 컴퓨터는 현시대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의 도구이다.* 사이버 갤러리로의 여행그는 자신의 미술이 놓인 영역이 디지털 파인 아트(Digital Fine Art)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단지 작업의 도구나 방법에 국한된 용어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생산되고 향유되는 방식을 가르키는 용어다.말하자면 미술의 생산이 디지털의 세계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와 더불어, 미술이 대중에게 향유되고 공감을 얻는 공간도 바로 디지털의 영역, 곧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과거 자신의 컴퓨터 그림이 고해상도의 컬러 프린터로 출력을 한 후 화랑에서 전시된 반쪽의 디지털 미술이었다면 지금 그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생산과 소비가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디지털 예술이다.
바로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고 사이버 전시회(http://www.zo.co.kr)를 연것이다. 그가 사이버 전시회를 기획한 이유는 두가지이다.
우선 그는 화랑에서의 전시가 매우 제약적이라 느낀다. 전시 기간과 장소면에서 제한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어렵다.이에 반해 인터넷 전시는 지방에 있는 작가들은 물론 해외 거주자들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 기간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그는 전시 기간을 1년으로 할 계획이어서 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또한 매주 한점씩 새로운 그림을 추가해 나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현재 전시된 그림은 순수 컴퓨터 완성품만 40여점에 이른다.또한 음란 사이트 등 왜곡된 사이버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잠시나마 인터넷을 통해 좋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순수예술의 세계에 취해 보는 문화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이버 전시회를 연 그의 또다른 목적이다.
실제로 그의 사이버 갤러리엔 하루 20~30명의 관람객이 꾸준히 방문한다. 현재 방문객은 7천명 정도 더러는 외국 유학생이 이 분야에 대해 질문과 조언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사이버 공간에 또 하나의 갤러리를 열었다.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한 작가들이 너도나도 사이버 갤러리를 만들 수 없느냐고 자꾸 묻는 통에 아예 통합 홈페이지를 만든 것이다.
이름하여 파워갤러리. 현재 서양화,동양화,조각,판화 등 작가20여명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앞으로는 가능한 모든 순수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 작가당 5점으로 제한하여 전시할 계획이다.
그는 앞으로 5년쯤 뒤에는 인터넷을 모르는 작가들은 소외될지도 모른다고 농담처럼 말한다."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현대에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컴퓨터 미술을 했을 것"이라고 자신하는 그의 말처럼.아마도 21세기의 미술은 컴퓨터의 직간접적인 영향에 자유롭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볼 때 앞으로 컴퓨터 순수미술을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한국 미술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미 실현의 첫발을 뗀 것이나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것은 작가의 뜨거운 예술혼에 대한 우리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리라.